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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읽어야 한다

#3. 1920. 러시아 공산주의와 유럽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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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미제스는 정부가 임금과 가격을 통제하는 소련의 사회주의 경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으며 사회주의의 큰 오류는 제대로 된 가격체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1922년 소련의 상황은 정말 그의 예언대로 되는 듯 싶었다. 레닌은 국가가 경제를 통제해 임금과 물가를 정해주도록 하였지만, 소련은 그 대가로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소련은 추위와 기근, 굼주림과 죽음에 시달리는 암울한 땅에 다름 아니었다.

 

 

레닌은 새로운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농부들의 농산품 판매를 허용했고 농지의 소유권도 주게 되는 이른바 신 경제 정책을 수립한다. 그리고 소규모 사업을 허용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레닌은 그 때문에 그의 좌파 동료들로부터 마르크스의 원칙을 버렸다고 신랄하게 비판당한다. 그럼에도 레닌은 그러한 비판에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오히려 레닌은 그를 비판하는 이들을 오히려 바보라고 비난했는데 이는 철강, 철도, 석탄 등 중공업 즉, 그가 경제의 핵심부문으로 불렀던 것들을 앞으로도 정부 그리고 볼세비키가 통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채 안돼 레닌은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역사가 자신들 편이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그로부터 30년도 안돼 러시아를 비롯해 동유럽과 중국 등 인류의 1/3이상이 레닌주의 경제이론 아래서 살게 되었으며, 그의 후계자들은 소련의 핵심경제 부문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를 강화해 나간다. 스탈린은 국가에 의한 중앙계획경제를 도입하였으며, 스탈린 치하에서 공산당은 경제의 모든 것들 계획하고 통제하였다. 공산주의 확산될 수록 자본주의는 곧 사라질 것처럼 보였다. 

 

 

한편 이러한 소련과는 달리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케인즈가 예측한 대로 평화의 경제적 대가를 치루고 있었다. 막대한 전쟁보상금을 내기위해 패전국들은 더 많은 돈을 찍어내야 했으며, 그 결과는 인플레인션, 하이퍼인플레이션이었다. 다름아닌 경제적 파국!을 맞게 된다. 1920년대 초반의 당시 사람들은 쇼핑을 가기위해 바구니 돈을 한 가득 담아 가야만 했다. 돈은 벽지보다도 가치가 없었으며, 백만마르크의 지폐는 난로의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통계 연구소에 다니던 하이에크의 임금은 8개월 사이에 200번이나 인상되었다.

 

   

 

1913년 12마르크의 신발은 10년후 1923년엔 32조 마르크를 호가한다. 히틀러의 단골 맥주가게의 맥주 한잔가격은 10억 마르크에 거래되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 바로 그것이었다. 그 영향으로 국민들의 자산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은 나치와 하틀러가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된다. 하루 아침에 재산을 잃은 사람들은 그들을 지지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엔나의 하이에크는 인플레이션이 사회를 좀먹고 민주주의를 망치는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으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은 결국 그의 경제철학의 토대가 되고 만다. 이와 같이 1920년대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러나 반대로 뉴욕은 그야말로 번영의 1920년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미국의 도시들은 호황!을 맞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인들은 돈을 쓰고 춤을 추고 파티를 벌였다.

자동차도 사고 값비싼 밀주도 마신다.

 

그리고 "주식"을 엄청나게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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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an Euler

AtMAN & COMPANY

IT기술을 활용한 현금흐름 중심의 기업의사결정 분야에 극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시스템 설계와 개발에 모든 캐리어를 걸었다. 세계역사를 배경으로 물리학, 수학 등 자연과학과 비즈니스 이론, 시스템 설계방법론을 지식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기업정보시스템 적용에 대한 연구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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